중국을 돕는 손길들 5.4-8, 2005
신안 전 학교 컴퓨터 선물
뜻밖에 귀한 손님들이 오셨다. New York Flushing에서 목회하는 고재청과 홍춘식 친구들이 방문하였다. 컴퓨터를 지원해 달라고 부탁한 신안 전 조선족 자치 전에 있는 조선족 소학교에 컴퓨터 한 대를 지원해 주겠다고 샀다. 싣고 가는 길에 해림 시에서 강 종교 주임을 태우고 가다가 산시 향(면)에 있는 김좌진 장군의 생가를 돌아보았다. 두 친구는 뜻밖에 청산리의 영웅이며 항일투사 김좌진 장군의 유택을 방문하게 되어서 몹시 반가워하고 있었다. 신안 학교에 도착하여 교직원들과 학생들의 환영을 받았다. 학교에 컴퓨터 증정식을 했다. 교장 선생의 집에서 특별한 요리를 준비해서 전 정부 간부들과 함께 사귀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신안은 넓은 평야 지대로 교통이 불편한 오지이다. 일제가 여기에 관동군의 군량미 조달의 목적으로 조선의 전라 경상도에서 가난한 농민들을 속여서 데려와 이 넓은 황무지를 논으로 개간하여 쌀 생산을 하던 곳으로 조선인의 피와 땀이 흠뻑 배어있는 곳이다. 조선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를 가든지 왜인들의 착취와 압박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양린 한족 가정교회에 들렀다. 짓고 있는 건물이 아직 수리가 다 끝나지 않고 있었다. 가정지도자는 돈이 모자라서 창문을 못하고 있다고 하자, 이 사정을 들은 Mr. 홍이 U$ 500을 지원하여 주겠다고 약속하여서 그들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여주었다.
경박 소학교 책걸상 기증 5.5 금.
전에 목단강 정치 협상 회에서 어려운 가운데 있는 경박 향(면) 소학교에 책걸상을 지원해 주기를 바라는 요청을 받고 있었다. 오늘에야 그 부탁 일부를 들어줄 수 있게 되었다. 고 목사 교회에서 준비한 후원금으로 책걸상 50개를 만들어 기증하러 가는 날이다. 영안에서 돈화까지 고속화 도로를 만들고 있어서 길이 너무 험하여 힘들었다. 학교에 도착하니 학생들이 우리를 맞으려고 운동장에 오색기들을 꽂아 놓고 중, 소 학생들이 늘어서서 환영하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건만 말 되게 안 듣는다. 마침 친구들이 미국에서 가지고 온 연필과 지우개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교장에게 주었더니 몹시 기뻐하였다. 좀 의아한 것은 책걸상 증정식은 학교장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향장(면장)이 나서서 주관하고 있어서 선생들은 가치가 없어 보여서 안 되었다. 사실 이것이 중국의 현실이었다. 중국의 지방 교육기관은 지방 행정관청으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고 있어서 실제로 교육기관은 서열이 제일 낮은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증정식에서 향 장과 나 그리고 정치협상회 주임이 한 마디씩 말한 다음 우리에게 감사패를 주면서 식을 마쳤다. 경박 향은 경박 호의 최상류로 양어장이 발달 되어 있었다. 점심은 식당에서 고급스럽게 아주 잘 차렸다. 고 목사는 당료가 심하여 음식도 잘 못 먹고 아주 피곤한 가운데 있었는데 여기 싱싱한 물고기와 보신 고기들이 나오자 생기가 돌면서 그렇게 좋아하고 있었다. 돌아올 때 나눔의집을 위하여 싱싱한 물고기를 한 보따리 싸 주었다. 나눔의집 식구들은 목단강 정부 차로 돌아가고 우리는 장백산으로 가려고 둔화로 떠났다.
장백산으로
동경성에서 둔화까지 포장도로 건설을 하느라 길이 오던 길보다 더 나빠서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한 시간 정도 가다가 앞에 차가 빠져 차가 밀려 있었고 길이 아닌 밭으로 질러 올라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였다. 나도 질러가려고 하다가 빠졌다. 큰 트럭에 50원을 주고 차를 빼냈다. 길림 성 경계에 들어오니 아스팔트 길이 나와서 반가웠다. 돈화에 들어오자 밤이 되어서 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길이 험하여 대단히 힘든 하루였다. 차가 고장 나지 않은 것을 감사했다. 마침 호텔에 시설이 좋은 대중목욕탕이 있어서 피곤한 몸을 풀 수가 있었다.
이도백화(一道百化) 4.6 토.
아침 길을 달려서 이도백화 양양 할머니 집에 도착하여 점심을 했는데 할머니가 반가워서 음식값을 받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손님들도 보내고 나도 그리로 가면 항상 들리기 때문에 자기네 사업의 후원자로서, 또 내가 고향에 와서 좋은 사업을 한다고 좋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도백화 조선족 교회에서 집사로서 주님을 섬기시는 노 자매는 목단강에서 오는 중국인 투어 차에 우리에게 보내는 도라지나 더덕을 가끔 보내 주시기도 하였다. 오후에 장백산에 가서 두 분만 들어가게 하였다. 밖에서 나는 쉬면서 한참 기다리는데 Mr. 홍이 혼자 나오기에 물었더니 Mr. 고는 천지를 보러 올라갔단다. 자기도 함께 가다가 계단을 오르다가 숨이 차서 포기하고 나오는 길이라고 한다. 한 시간 뒤에야 Mr. 고가 나오는데, 천지가 얼어 있기는 해도 천지를 보아서 기쁘다고 했다. 우리는 양양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는데 더덕과 당신이 손수 담근 고추장을 싸서 미국 손님들에게 주었다. 토장국, 더덕구이는 정말 맛이 있었다. 여기서 연길까지는 230Km 어두운 밤길을 달렸다. 마침 Mr. 홍이 스틱 차를 운전할 수 있어서 내가 좀 쉴 수 있었다. 길은 험하였다. 밤늦게 도착하여 미리 연락하여 둔 단골 삼꽃 여관에 들었다. 주일 아침에 우리는 도문으로 나가서 조성길 형제가 수고하고 있는 조선족 교회에서 두 분이 설교하고 교회에서 준비한 조선 음식을 나누면서 교제를 나누었다. 오후에 두만강 강변공원에 나아가서 두 분은 처음 보는 저 건너 북한의 산야를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용정과 일송정으로 돌아보왔다.월요일 두 분은 아침 6:20 날틀로 북경으로 떠났다. 두 분은 나에게 선교비 U$ 1,000을 주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플라스틱으로 된 수도꼭지
나눔의 집 목욕탕 샤워기들이 문제가 생겨서 쓰기에 불편해져서 새로 갈아야 했다. 노인들과 정신이 어리어리한 아이들이 너무 꽉 잠그고 세 개 틀고 그래서 오는 문제였다. 아무리 타 일러도 안 되는 것 같았다. 부품들을 사다가 쓰는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얗게 생겨서 나는 스테인리스로 알고 샀는데 하나를 파이프에 끼우고 힘껏 조이니 부서져 깨져버린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자세히 보니 플라스틱에 하얗게 코팅을 하여 스테인리스로 속게 만든 것이다. 부품들을 다 가지고 나가서 항의하자, 주인은 웃으면서, 그것은 싸구려라고 하면서 진짜 스테인리스(不锈钢)를 내놓는다. 값은 두 배나 비쌌다. 보일러공과 수리하느라 종일 애를 썼다.
가짜 휘발유 9.8 수
오늘 수요 오전 집회에 가는 길에 두 할머니를 모시고 바람도 쐐 드릴 겸 차이허 교회로 갔다. 집회를 마치고 교회 식구들과 점심을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휘발유를 넣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차가 가다 서다 한다. 20분이면 될 거리를 두 시간이나 걸려서 목단강 우리 단골 차 수리소에 도착하였다. 기름을 검사하더니 물이나 뭐가 섞인 것 같다고 하면서 기름을 다 빼고 새로 넣어보라고 하여서 그렇게 했더니, 아무 문제가 없다. 정비사는 나에게 할 수 있으면 시외나 농촌에서 기름을 넣지 말라고 한다. 시내에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말만 듣던 가짜 휘발유를 오늘 처음 경험하였다.
김제화
jewhaki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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