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Self-sufficiency, 自给自足) 1999-2012
우리는 믿음 선교를 하는 자원 선교사로서 약속된 충분한 선교 지원금이 없어서 무료 양로원을 하는 일은 무리였다. 그래서 중국에서 선교하면서 살아야 하는 길은 자급자족이었다. 앞마당은 당 년에 개간하여 그해 가을부터 겨울에 먹을 것은 거두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울타리 밖은 2년에 걸쳐서 개간하여 모두 4000여 평으로 3년째부터는 30여 명이 먹을 양식의 절반 넘게 자급자족이 되기 시작하였다.
1. 농작물
년 년이 4~5월에 씨와 모를 심고 가을이 올 때까지 가뭄과 황사 그리고 우박피해도 컸지만, 자연은 상처 받은 작물들을 회복시켜주어서 가을이면 생각보다 넘치는 열매를 거두도록 해 주었다. 우리 밭이 거름기가 많지 않은 개간 땅이어서 봄이면 말똥을 거두어 오고 자체에서 만든 퇴비를 사용하고 화학비료는 쓰지 않았다. 그래도 감자 옥수수 콩 종류, 배추, 무, 고추 오이 수박 부추 파 등 수확은 풍성하였다. 감자와 고구마는 한겨울 우리의 든든한 양식이 되어주었다. 특별히 고추는 몇 종류를 심었고, 청정 재배로 만든 고춧가루는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다. 찰옥수수는 한주에 한두 번 점심으로 여름 내내 삶아 먹으므로 양식에 도움이 되었고, 겨울 양식을 위하여 황금알이 가득한 옥수수는 옥수수 쌀이 되어 보조 양식이 되었다. 서리가 내릴 것 같아서 노인들을 동원하여서 고추와 잎을 서둘러 따서 다듬어 나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해바라기를 많이 심어서 거두어 말리느라 수고가 많았지만, 눈 쌓인 긴 겨울 노인들의 심심풀이로는 최고의 간식이 되었다. 목단강 지역은 9월이면 서리가 내리므로 채소작물은 다 거두어진다. 년 년이 드리는 추수감사절은 노인들에게는 잘 먹는 즐거운 날이다.
이른 봄이면 옥수수 그루터기를 파내는 일로 농사일이 시작된다. 한해의 농사 계획은 무엇을 어디에 심을 것인지를 정하고 경운기로 온 밭을 갈아엎는다. 해마다 봄에 심는 주 작물은 옥수수 감자 고구마 콩 종류 그리고 고추 등 각종 채소 그리고 가을은 김장 배추 무 등이다. 모든 작물은 비료 농약을 거의 쓰지 않는 청정재배를 원칙으로 하였다.
감자 밭
고추
고구마
고구마 콩
고추장 만들기
우리는 콩을 심어서 살림을 잘하는 아내는 노인들과 메주를 만들어 고추장 된장 간장을 만들어 살림에 큰 보탬이 되었다. 나눔의집 직원들에게 된장 고추장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데 한족 자매는 처음 만들어 보면서 신기해했다. 한족들은 고추장은 담아 먹지 않고 된장은 만들어 먹는데 만드는 방법이 다르다. 그들은 물 된장 같이 만들어 먹는데 맛이 없다.
나눔의집 들어오는 앞과 뒤뜰
옥수수 거두기
나눔의 집은 특별한 때 외에는 매일 의무적으로 하는 노동은 없다. 스스로 알아서 김도 매고 채소들을 뽑아다 놓으면 알아서 다듬고 한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밥 먹고 정신 부담(스트레스)(스트레스) 없이 공기 좋은 곳에서 살다 보니 모두 건강이 좋아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두 지팡이를 짚고 겨우 걷던 노인을 데려왔는데, 한 달이 지나자 지팡이 하나를 버리더니 몇 달이 지나자 하나마저 버리고 조금 비틀거리기는 해도 그런대로 정상이 되었다. 오른쪽 사진에 어깨에 옥수수자루를 메고 오는 노인이 바로 그 노인이다.
옥수수 고추 말리기
서리가 내릴 것 같아서 거둔 고춧잎과 팥 등을 노인들이 다듬고 있는데, 팔이 하나이신 노인도 나름대로 보태려고 열심히 한 손으로 팥을 까고 있다.
중국 청무- 붉은색이지만 속살은 희고 청무 맛이다.
들 미나리와 부추
산 아래 물이 스며 나오는 수풀에 들 미나리가 자라는 곳을 찾았다. 심심치 않게 신선한 미나리를 공급하여 주었다. 얼마를 캐서 이렇게 심어 기르기도 하였다. 부추도 잘 자라 베어 먹으면 또 자라나곤 하였다.
6년 더덕 두릅
할머니가 들고 있는 더덕은 6년 된 것으로 누구 말에 따르면 인삼보다 낫다고 하였다. 나눔의 집 그물 철망 울타리에는 줄 콩도 많이 올라가고 더덕도 많이 올라간다. 봄이면 더덕 꽃 향 내음이 은은하다. 도라지도 화단 주변에 심어서 심심치 않게 건강식품들이 되고 있었다. 목단강 시장에는 봄이 되면 시골에서 온갖 나물들을 뜯어서 나온다. 게 중에는 아주 초라한 조선족 아주머니들을 볼 때도 있는데, 딱하게 생각되어서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먼 산골에서 온 것을 알게 되어 딱해서 팔아주기도 하였다. 어느 봄 두릅을 사려고 시장에 갔다가 두릅 묘를 파는 것을 보고 20주 사다가 심었다. 몇 년이 지나자 봄이면 가시 줄기에 피어나는 두릅 순을 뜯을 수 있었는데, 순이 나올 때 순이 모여서 나오지 않고 흩어져 나오고 있어서 알아보았더니 개두릅이라 하였다.
그리고 봄이면 밭과 들에서 달래를 많이 캘 수 있었고, 들에는 고들빼기, 냉이, 씀바귀 등이 흔했고, 뒷산에서는 고사리를 우리 식구들이 먹을 만큼 뜯을 수 있었고, 여름에 비만 내리면 몇 노인은 뒷산 솔밭에 가서 소나무 버섯을 심심치 않고 따오곤 하였다. 봄이면 뒷산 소나무 숲에서는 노란 송악 가루가 막 쏟아지는데 어렸을 때 먹어본 경험이 있어서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해 먹을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 사람이 먹고살 수 있는 많은 것을 주시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에게 감사할 것 밖에 없다.
김제화
jewhaki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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