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한민국 여행/전라남도

광주 항일 학생운동의 진원지

나주 옛 역(舊驛)

나주에서 꼭 찾아보아야 할 곳이 있다. 그곳은 항일 학생운동역사의 뜻을 간직한 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나주의 옛 역(舊驛)이다. 이 옛 역은 일제 강점기인 1913년 7월 호남선 철로가 놓이면서 1925년 10월 23일 죽림동에 처음 세워진 나주역 건물이다. 이 역이 바로 광주 학생 운동의 진원지이다. 전라남도는 항일 학생운동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기념물 제183호로 지정하여 2007년 역 건물을 수리하여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 뒤 호남선이 복선으로 놓이고 KTX가 다니게 되면서 현대 시설을 갖춘 나주의 새 역은 나주시청이 가까운 나주역길 56에 세워지면서 이 역은 항일 학생 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역사적 기념물로 남게 되었다.

 

 

역사 안 개찰구에는 밀랍으로 그때 역무원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여 놓아서 그때 그 시절을 실감 나게 해 놓았다.

 

광주 학생운동 사건의 역사적 배경

이때는 일제 강점기로 한인들은 일본인들의 착취와 억압 아래서 힘든 삶을 이어오고 있었다. 특히 호남평야의 기름진 드넓은 들은 왜놈 지주들이 장악하여 호남 사람들은 소작인으로 노예 같이 살고 있었다. 물론 이런 현상은 호남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그러했다. 왜인들은 조선사람을 미개한 야만인으로 업신여기는 일로 두 민족은 늘 긴장 관계에 놓여 있었다. 독립 의지를 불태우고 있던 한인들의 저항정신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때는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애국 단체들이 비밀리에 만들어져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항일 광주학생운동은 전국적으로 항일 학생운동이 퍼져나가는 도화선이 되었다. 특히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진원지인 나주 역은 일본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이 날마다 광주까지 기차로 통학하면서 마주치는 곳으로 언제나 긴장감이 돌았다. 특히 일본 학생들의 부모는 대지 주거나 관리들의 자녀들로 조선 학생을 업신여기며 깔보고 있어서 늘 적대적인 감정 관계에 있었다.

 

댕기머리 사건

사건의 발단은 나주 역에서 일본인 남학생들이 한국인 여학생들을 희롱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1929년 10월 30일 오후 5시 광주를 떠난 열차가 나주역에 닿았다. 내리는 승객 가운데 한인 학생들도 일본인 학생들도 있었다. 역을 나온 광주중학교 3학년인 대지주의 아들 후쿠다 슈조[福田修三] 등 일본인 학생들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지금 전남여고) 박기옥(朴己玉) 이금자(李錦子) 이광춘(李光春) 한국 여학생들의 댕기 머리를 잡아당기면서 모욕적인 말로 희롱하였다.

 

 

이때 광주고등보통학교(지금 광주제일고) 2학년 학생인 박기옥의 사촌 동생 박준채(16살)가 이 광경을 보고 달려가 후쿠다 슈조를 밀치면서 사과하라고 요구하자, 건방진 후쿠다는 '조센징 주제에'라고 무시하자. 박준채는 그의 따귀를 때리고 멱살잡이로 시비가 붙자 광주고보 한국 학생 30여 명과 광주 중학 일본 학생 50여 명이 몰려들어 패싸움이 벌어졌다. 이때 출동한 경찰이 일방적으로 한국 학생들만 무차별 폭행하는 것을 보고 한국 학생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로 인해 신간회 광주지회와 광주청년동맹은 "우리의 투쟁 대상은 광주 중학생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다.”라고 하면서 거족적인 광주 항일 학생운동을 일으키면서 전국의 194개 학교 54,000여 명의 학생이 항일운동에 참여한 역사적 사건으로 전국으로 번졌다.

 

 

 

용감했던 박준채 학생은 이 일로 강제 퇴학을 당했으나, 영정고등보통학교로 옮겨 졸업하고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뒤 조선대학교 교수 대학원장을 역임하였고, 정부는 그에게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 사진자료 사이트 제공

김제화

'대한민국 여행 > 전라남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 호남의 맹주 나주  (0) 2025.01.31
왕건의 사랑 이야기  (0) 2025.01.31
소문난 나주 곰탕  (0) 2025.01.31
영산포  (1) 2025.01.31
수묵 화의 고장 진도!  (0) 2023.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