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튀르키예 일곱 교회 순례 3.11-18, 2013
◈ 튀르키예(터키) 공화국은 어떤 나라?

★ 튀르키예 나라 기는 초승달과 별이다. 초승달은 모슬렘의 상징이다. 마호메트가 깨달음을 얻고 새벽하늘을 보니 초승달과 별이 빛나는 모습을 본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나라 이름 : 튀르키예 공화국( Republic of Türkiye)
나라 크기 : 약 78만 ㎢(한반도 3.5배)
인구 : 약 8000만 명
민족 : 터키족 90% 쿠르드족 7% 소수 아르메니아, 그리스, 아랍인
서울 : 앙카라(Ankara)
종교 : 약 99% 수니파 모슬렘 소수 기독교 유대교
언어 : 90% 터키어, 쿠르드 아랍 알메니안
화폐 : 터키 리라(TL)/ 환율 U$ 1= 1.7TL
※ 그동안 나라 이름이 Turkey로 불렀는데, 영어로 터키는 칠면조이며, 겁쟁이라는 속어도 있고 해서, 2022년부터 '강하다'는 뜻을 가진 민족 원래의 이름인 튀르키예(Türkiye)로 나라 이름을 바꾸었다.
▶ 역사
역사적으로 열강의 각축장으로 시달려 온 고난 많은 나라이다. 그리스에 이어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로마제국은 유럽과 지중해 연안과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큰 제국으로 서울은 로마였다. 콘스탄틴이 제국을 평정한 뒤에 제국의 서울을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로 옮기면서 제국의 분열과 함께 로마 가톨릭도 분열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하나인 제국을 통치하던 마지막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일세는 395년 죽기 전에 17세인 장남 아르카디우스(Arcadius)에게 동로마(터키) 황제를 그리고 12세의 차남 호노리우스(Honorius)를 서로마(이태리) 황제로 임명하므로서 제국은 동서로 나누어진다. 서로마의 서울은 로마 그리고 동로마는 콘스탄티노플이 된다, 그리고 서로마는 476년에 멸망하고, 동로마는 거의 1000년 세월을 이어오다가 1453년 오스만제국의 모슬렘 세력에 의하여 멸망하면서 로마제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오스만제국이 무너지고 터키는 1923년에 입헌 공화국이 되었다.
▶ 지리적 환경
서남아시아에 자리 잡은 터키는 동서로 길게 누운 모양을 한 아나톨리아 반도(Anatolia Peninsular)라고 부른다. 마치 한국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한반도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터키는 동서남북 여덟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북쪽은 흑해(Black Sea), 남쪽은 지중해(Mediterranean sea), 서쪽은 에게해(Aegean Sea)로 둘러싸여 있다.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아시아(Asia), 또는 소아시아(Asia Minor)는 터키이다. 내륙지역은 대부분 고원지대이며 북쪽과 동쪽 지방에는 험한 산들이 있는 땅이다. 흑해와 에게해가 이어지는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 사이에 마르마라 바다가 있다. 마르마라 바다 북쪽은 유럽 대륙이며, 보스포루스는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지점이다. 이 바다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경계로 터키는 두 대륙에 걸친 나라이므로 지정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요지를 차지하고 있다.

▶ 에게해(Aegean Sea)
터키는 에게해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 그리스 아테네를 마주하고 있는 아름다운 바다다. 4000년 전부터 에게해 연안은 크레타, 미케바, 트로이 등 문명의 꽃을 피운 발상지이다. 이 문명들이 서로 충돌하고 대결하면서 또 새로운 문명을 일으켜 왔다. 아름답게만 보이는 이 바다를 차지하려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인류 발전에 공헌한 인물들이 태어난다.
보드룸에서 역사학자 Herodotos 출생
로도 섬에서 의학자 Hippocrates 출생
이오니아에서 수학자 피타고라스 출생(미케아 문명 발상지)
▶ 로마와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마지막 전쟁
동로마 제국의 서울(首都)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을 에워싸고 있는 22Km의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신도 뚫을 수 없다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졌다. 바다에는 쇠사슬을 쳐 놓아서 배가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유럽 쪽을 정복한 술탄 메흐메트 2세는 이제 동방의 로마를 정복하기 위하여 바다 건너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해야만 했다. 그는 연구 끝에 기가 막힌 묘수를 찾아낸다. 군사들에게 배를 산으로 끌고 올라가 바다로 내려서 공격하여 성이 뚫리면서 1453년 5월 29일 천년 로마제국은 멸망한다. 아울러 제국의 힘을 의지하고 그 그늘에 있던 로마가톨릭과 동방정교회도 무너지게 된다. 성이 무너진 다음 날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뀌면서 오스만제국의 서울이 된다. 동로마 제국을 오스만제국에 합친(병합) 뒤 에게해와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는 몇몇 섬들(Levanto, Cyprus, Rhodes)의 로마가톨릭 세력들과 전쟁을 하게 된다. 오스만제국의 영토 확장은 결국 이슬람과 로마가톨릭의 종교전쟁이 되었다. 결국, 오스만제국이 섬들을 정복하면서 마지막 남아 있던 로마가톨릭의 세력은 이 지역에서 사라지게 된다.
▶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땅
아나톨리아 반도는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하나님의 섭리가 묻어나 있는 땅이다.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에덴동산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며, 노아 방주가 얼음 속에 묻혀 있다는 아라라트산의 신비가 우리를 궁금하게 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하란(Haran)도 터키 동남쪽에 있었고, 지금 그 하란에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모두의 성지로 사이좋게 교회와 모스크가 들어서 있다. 동서 대륙이 이곳에서 바다를 건너 이어주듯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는 다리 역할도 하였다. 터키는 신구약의 배경이 되는 땅이다.
헷 족속
Hittite(히타이트) 족은 철기시대를 연 왕국으로 이 나라의 중심부에 있었다. 한글 성경에는 “헷” 족속으로 표기하고 있다. 헷 족속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노아의 아들 함의 아들 가나안의 아들이다. 노아의 증손자이다.(창세기 10:15)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헷 족속은 역사서와 예언서에 이르기까지 넓게 나타난다. 구약성경이 실화라는 것을 부정하는 학자들에 의하여 헷 족속의 역사적 존재도 여리고와 마찬가지로 실제가 아니라 신화라고 여겼다. 그런데 옛 헷 족속의 땅에서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많은 헷 족속의 석판들이 발굴되면서 실제 존재한 족속임이 증명되었다. 고고학의 큰 업적 가운데 하나는 성경이 신화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변증법적 도구가 되고 있다.

▶ 동서 로마가톨릭의 나누어짐
기독교회가 기원후 100년이 지나면서 초대교회라고 일컫는 사도 시대가 지나고 사도들의 제자들이 이끄는 속사도 시대는 313년 콘스탄틴의 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으로 기독교 자유화를 선포하므로 끝나게 되면서 지역에 따라 크고 작은 교회들은 장로(감독)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제국 안에 있는 수많은 이교도가 기독교 안으로 들어오면서 로마 기독교는 빠르게 이교도의 우상 종교로 변하여 가면서 새로운 옷을 입은 로마가톨릭이란 기독교가 생겨났다. 변형된 기독교에는 소위 자칭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Papa(교종)가 나타나 세속적인 정치조직으로 권력을 가지고 통치하면서 제국 안의 교회를 통합하여 갔다. 수 세기가 지난 뒤 로마가톨릭은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가장 불행한 사건인 십자군 전쟁과 종교 암흑시대를 이끌면서 헤아릴 수 없는 복음주의자들과 억울한 생명을 학살하는 살인마 집단이 된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나누어지면서 양대진영의 가톨릭은 주도권의 다툼에 휘말리게 된다. 한편 서로마가톨릭은 성상 성화 유물 숭배에 깊이 빠져 가고 있었는데, 동로마에서는 이를 심각하게 비판하다가 드디어 1054년 동서의 가톨릭은 나누어진다. 로마의 가톨릭은 그대로 남게 되고, 동로마의 가톨릭은 그리스 문화의 옷을 입은 동방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가 된다. 900여 년 동로마 제국에서 동방정교회는 꽃을 피우다가 1453년 제국이 멸망하면서 동방정교회는 빠르게 사라지고 모슬렘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 투르크 민족 (터키어: Türk milleti, 영어: Turkish people)
터키의 주 민족은 터키어를 구사하는 튀르크 계 민족이다. 터키인들은 스스로 조상이 중앙아시아에서 왔다고 말하며 훈족과 돌궐의 후예라고 한다. 이 민족은 오래전 중국 북방에서 살던 민족으로 중국어로는 “돌궐”로 불리었다. 이들은 북방 유목민의 한 부류로 6세기 중엽부터 약 200년간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돌궐(투르크) 민족이다. 터키 사람들은 지금과는 달리 본래 돌궐과 훈족은 아랍 족이 아닌 인종적으로는 몽골계통의 황인종에 속했으나, 서쪽으로 옮겨가면서 이슬람교를 받아들여 아랍인이나, 페르시아인과의 혼혈로 중동 인종의 외형으로 변화되어 오다가, 급기야는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을 정복하고 발칸 반도의 여러 나라를 정복하면서 유럽계 민족과의 혼혈을 거듭하면서 오늘날 보는 것 같은 서구적인 외형을 가진 인종이 되었다.
터키와 한국은 형제의 나라라는 말을 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가깝게는 터키가 한국전쟁 때 참전하여 피 흘리면서 한국을 지켜준 것에 대해서 큰 뜻을 가진다. 그러나 참전국 가운데 다른 어느 나라도 서로 형제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또 하나는, 고구려 연개소문 때로 올라가서 역사적인 인연을 추정하고 있다. 그것은 당나라가 고구려를 쳐들어오자, 돌궐족과 함께 당나라를 물리치고자 사신을 보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돌궐이 고구려를 도와 참전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런데 형제라는 추측은 지금 우즈베키스탄의 아프라시압 궁전벽화에서 시작된다.
▶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
이 벽화는 1965년 소련 고고학자 알리바움 팀에 의해 발굴되었다. 이 벽화에는 궁중 행사의 그림으로 사마르칸트 왕이 12명의 외국 사절들을 알현하는 행렬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알리바움은 벽화의 그림에서 왕이 외국 사절들을 접견하는 인물들을 하나씩 분석하다가 벽화의 가장 오른쪽 있는 두 사람을 주목하게 된다. 젊게 보이는 이들은 머리에는 깃을 꽂은 관을 쓰고 윗도리는 좌임(왼쪽으로 옷을 묶음)을 했으며, 고리로 된 긴 칼을 차고 있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이런 모습을 한 인물을 본 적이 없었던 그는 1958년 평양에서 출판된 “고구려 벽화 고분연구”에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관에 깃을 꽂은 똑같은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그 뒤 연구를 거듭하여 그는 그 두 사람이 고구려 사신이 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래서 양국의 형제 인연설이 생겨난 것이다. 지금 터키 사람 가운데서도 어렸을 때 29%는 몽고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방 선교의 전초기지
터키는 복음이 유럽을 건너 땅끝까지 이르기 위한 다리 역할을 한 선교기지이며 기독교 선교의 산 역사의 현장이다. 사도 바울의 고향 다소, 그리고 사도 요한이 유배 생활을 하던 밧모 섬이 있는 곳이다. 주님은 이방 선교의 문을 열기 위하여 희랍의 철학적 학문과 종교지식을 두루 갖춘 핍박 자 사울을 부르셔서 첫 이방인의 선교사가 되게하신다. 그로하여금 이제 좁은 유대 땅에서 넓은 이방 세계를 향하여 선교의 문을 여는 첫 주자가 되게하셨다. 첫 이방인의 교회인 수리아(시리아) 안디옥 교회로부터 이방 선교사로 보냄을 받아 3차에 걸쳐서 선교를 하던 이방 선교의 중심지가 바로 터키다. 우리의 순례 길은 사도 바울의 발 발자취를 따라 가 보려고 한다. 그리고 초기 기독교인들의 피난처인 가파도키아와 계시록 2-3장에서 소개되는 7교회(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와 여러 지역을 찾아보려고 한다. 일곱 교회는 터키의 남서부 지중해 가까이에 있는데 바울과 그 일행이 유대에서 이 먼 길을 3차에 걸쳐서 오가면서 그들이 겪었던 역경과 고난들을 어떻게 다 상상할 수 있겠는가! 평안한 이 세상의 삶을 버리고 오직 복음을 전하고자 저들의 삶을 온전히 바친 이 땅에서 나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게 되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 역사 자료와 그래픽 그리고 대형 사진들은 사이트에서 인용.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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