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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교/2003-2004

해림(海林市) 종교 주임

해림 시 강호암 종교 주임과 만남 3.26 2004

우리가 선교 활동을 하는 지역이 목단강 시와 해림 시이다. 해림 시는 목단강을 끼고 길게 둘러 있고, 우리가 활동하는 곳은 해림 시 동쪽 끝쪽에 있는 차이허와 알잔 지역이다. 해림 시의 종교와 소수민족을 관리하며, 외국인들의 종교활동을 단속하는 사람은 조선족 강호암 주임이다. 지난번 차이허 공중변소와 시장통 거리의 쓰레기통을 기증하면서 전 정부의 식사 자리에서 인사를 나누고 잠시 본 적이 있었다. 오늘 루오 형제가 강주임이 당료로 목단강 제일병원에 입원하였다고 함께 문병을 가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서로 대화를 나누어보니 사람이 서글서글하고 막히지 않고 탁 트인 사람이었다. 중국의 종교정책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약값에 보태어 쓰라고 조그만 선물을 주고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오늘 이 만남으로 우리는 서로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갔고, 떠날 때까지 조선 민족의 교육과 우리의 선교 일을 협조하는 좋은 사이가 되었다. 우리의 좋은 관계는 2011년 은퇴하고 중국을 떠난 뒤에, 다시 목단강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우리는 서로 함께하는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한주 뒤 강주임과 루오가 나눔의 집 노인들을 위하여 과일을 많이 가지고 왔다. 중국의 현실과 앞으로의 중국 종교정책들을 속을 터놓고 나누었다. 강주임은 담배도 안 피우고 당료로 술도 별로 안 해서 일반 간부들과 달라서 편했다. 우리가 생산한 채소들과 집에서 만든 된장국에 한국식 김치에 밥을 차려 노인들과 함께 먹어보더니, 자기 입맛에 딱 맞는다고 좋아하면서, 여기사는 노인들이 복이 많다고 했다.

 

내가 강 주임에게 루오 형제가 장로가 되도록 추천해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원체 소문이 안 좋게 나 있다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헌금을 마음대로 쓴다든지, 독자적으로 한다든지, 안 좋은 투서가 올라온다고 했다. 루오는 믿기 전에는 감옥에도 갔다 오고 문제 많은 사람이다가 회심하고 가정교회도 개척하면서 바로 살자, 정부에서도 그의 종교활동을 지지하여 주었다. 교인 400여 명으로 발전하면서 겸손하지 못하고 독재하는 일로 함께하던 형제들이 떨어져 나가서 다른 곳에서 교회로 모이자 핍박한 일들은 형제자매들의 마음에 못을 박은 일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런 일들로 종교국과 양회에서 그를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중국 종교법에는 목사 장로 외에는 성례(침례, 성찬)를 못 하도록 규정해 놓고 있는데, 루오는 마음대로 하고 있다고 양회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었다. 해림 시 구역 안에는 66개의 기독교회가 있는데 목사와 장로가 한 분씩만 계시는데, 이들이 10년이 가도 어떤 교회는 한 번도 찾아주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믿음과 배짱이 있는 지도자는 나름대로 성례를 스스로 행하고 있었다. 나도 각 처소에서 내가 성례를 하거나 아니면 형제들 스스로 하도록 가르치고 격려를 하고 있었다. 내가 루오를 장로로 만들어 달라는 것은 루오 형제가 장로가 되면 우리가 선교 활동하는 지역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루오는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 있었다. 중국교회의 목사 장로가 되는 것은 우리네와는 다르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성직자가 되려면 우선 기독교 양회(중국 기독교( 협의회)의 허가와 종교 국의 동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빈손으로 목사 장로가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루오는 2017년에 겨우 장로가 되어 차이허 전() 지역의 감독 노릇을 하고 있다.)

 

◈ 양로원의 오이 밭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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