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부할 교회 단기선교 7.12-21, 2004
쌀 10톤을 요구하는 북한 6.
북한을 방문하고자 나는 이미 라선 당국과 이미 조율이 되었다. 저들이 요구하는 대로 10명의 부활교회 식구들의 입국 신청서와 서류들을 보냈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 북한 라선시 협조국 탁 지도원의 전화가 왔다. 부활 팀이 들어올 때 쌀 10톤을 가지고 들어오도록 해 달라는 주문이다. 그런 요구가 있으면 진작 말해 주어야지 이제 떠날 준비가 다 되어있는데 그런 요구를 하면 갑자기 어떻게 준비하느냐고 하니, 그는 캐나다에서 여기 오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데 쌀값이 얼마나 되느냐고 되묻는다. 나는 그에게 지금 2주 있으면 이곳으로 오는데 여러분은 말만 하면 돈이 준비가 되는 줄 아느냐고 한마디 했다. 나는 그분들이 조국에 들어가면 빈손으로 그냥 들어가겠느냐, 말하지 않아도 쌀 5톤 정도의 자금은 가지고 들어가니까 그 정도로 양해하고 그분들로 만나서 필요한 지원들을 소개해 주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며칠 뒤 다시 온 전화는 양식 국에서 10톤을 요구하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버티고 있었다. 별 볼 것도 없는 나라를 들어와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빌미로 쌀 10톤을 뜯어내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그러면 내가 다시 캐나다에 연락해 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참 힘든 사람들이고 갈수록 태산이었다. 토론토 부활교회에 전화로 북한의 요구 사항을 말씀드렸다. 다시 의논해서 알려 주겠다고 하였다. 며칠 뒤 온 전화는 북한은 그만두고, 김 선교사 선교지 사역지에서 봉사하고 아울러 중국을 똑똑히 보자는 의논이 되었다고 하면서 나에게 가이드를 해 주도록 준비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중국에 오는 부활 팀을 맞이하기 위하여 북경에 왔다. 우선 호텔을 정해야 하기에 우선 한국 부를 하는 곳에 이틀을 정했는데 그곳에서 자료를 구해서 알아보니 더 좋은 곳을 알아내었다. 한국 사람이 하고 있는 해륜 호텔에 방 5개를 예약했다. 그 안에 한국 식당도 있어서 좋았다. Van을 가지고 있는 조선 분을 만나 차도 이틀 쓰도록 계약을 했다.
북경 7.13-15
부활 팀은 긴 여정을 끝내고 13일 오후 1시경 북경 공항에 도착하였다. 호텔에 와서 방을 배당하고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 시간 절약을 위하여 모두 데리고 천안문 광장으로 갔다. 엄청나게 넓은 광장에 입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금성, 이화원, 원명원, 천단을 둘러보는 강행군을 하였다.
천안문 광장
만리장성
오늘은 만리장성을 보러 가는 날이어서 호텔 식당에다 우리 점심 도시락을 주문했다. 모두 만리장성을 오르면서 좋아들 했다. 그 옛날 인간의 힘으로 이 엄청난 공사를 했다는 데 대해서 모두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코스는 롱징샤(龙镜峡)인데, 가는 길 들녘에서 차를 세우고 길가 들에서 자리를 잡고 점심 도시락을 먹는 시간들을 가졌다. 중국 자연의 들녘에서 먹는 도시락은 한 맛도 있었고 멋도 있었다. 가져온 고추장 김, 멸치 등이 한 맛을 더 했다. 용경협(龙镜峡)은 깊은 골짜기를 막아 호수를 만든 곳인데 자연의 아름다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깎아지른 절벽을 올려다보면서 배를 타고 오가는 동안 모두 절경에 취해 있었다.
만리장성 팔당령
목단강으로 7.15-18
부활 팀의 북경 나들이를 마치고 날틀로 하얼빈에 내려 준비된 차로 목단강 나눔의 집으로 돌아왔다. 넓은 밭에 온갖 작물들이 있고 또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나눔의 집에 오니 모두 고향에 온 듯 푸근함을 느끼고 있었다. 여행에 피곤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일 것이다.
주일은 우리가 오전 저녁 두 곳의 한족 교회를 방문하여 집회를 가져야 하므로 피곤한 하루가 될 것이다. 주일 아침은 차이허 교회에서 말씀을 나누고 준비된 자매들의 율동과 찬양 연출은 중국 형제자매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으며 감동이었다. 오후에 알잔에 도착하여 알잔 소학교를 돌아보았다. 저녁 집회에는 학교 교장도 오게 해서 복음을 듣도록 했다. 그리고 연이어지는 율동과 찬양 연출은 농사일에 피곤한 삶은 보내고 있는 농촌 형제자매에게는 큰 위로와 즐거운 시간들이 되었다. 그리고 가지고 온 옷가지들을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 찾는 이 없는 이 깊은 산골 교회가 모처럼 웃음과 풍성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시간이 되도록 주님은 축복하여 주셨다.
도문, 연길 7.18-19
오늘은 연변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처음 타 보는 중국 시골 침대 열차가 모두 신기 해 하는 것 같다. 열차는 산골의 굽이굽이 돌아내리는 산골 풍경은 그저 한국 산야와 다를 바가 없다. 왕청에 이르러 이제부터 4Km가 넘는 똬리 굴을 지나게 된다고 설명해 주었더니 모두 일생에 처음 제일 긴 굴을 지나 본다고 좋아들 했다. 6시간의 긴 열차여행은 교제하며 잠자며 모두 즐거운 여행이었다. 도문에 내리서 조형제가 준비한 조선 사람의 여관에 들었다. 지금까지 중국 교회만 교제하다가 오늘 도문 조선족 가정교회에서 모두 통역 없이 설교하고 교제들을 하면서 한 민족의 정을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었다.
다음 날 항일의 중심지 용정 연길 그리고 방천 조선 중국 소련의 세나라 국경선이 맞닿는 삼각지를 돌아오는 긴 여행을 하였다.
연길 도문 조서족 가정교회
백두산(白頭山) 7.20
오늘은 부활 팀의 여정은 도문에서 이도백화로 가서 장백산을 오르고 그러고 나서 안도 역에서 하얼빈으로 가는 밤 침대열차를 타는 일정이다. 우리는 이도백화에 도착하여 친척같이 지내는 양양 할머니 집에서 세치네라는 작은 물고기를 넣은 된장국으로 점심을 먹으면서 모두 컬컬한 마음들이 시원해하고 있었다. 이 된장국은 중국 조선족에게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장백산에 오르는데 날씨가 흐려서 천지를 못 볼 것 같아서 걱정이었다. 장군 봉(2750m)이 굽어 보이는 꼭대기에는 올라 주위를 돌아보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천지에는 안개가 가득히 끼어서 천지의 물이 보이지 않는다. 이 천지를 보러 만 리 길을 마다하고 왔는데 미안했다.
안개 자욱한 천지
한 시간을 기다려도 개이지 않자 팀 리더는 물은 못 보았어도 백두산을 올라온 것으로 되었다고 하면서 내려가자고 하여서 내려와 힘차게 쏟아지는 장백폭포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야만 했다. 마침 한국 사람이 하는 식당이 생겨서 간단하게 요기들을 했다. 그리고 우리 팀은 안도(安图)에 와서 도문에서 산 기차표로 하얼빈행 밤 침대차에 올라 중국 사발 면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그리고 달리는 열차와 함께 모두 꿈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장백폭포
다음 날 아침 6시 25분에 하얼빈 역에 도착하였다. 이 역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대한의 적,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곳으로 대한의 자존심과 항일의 정신이 배어 있는 곳으로 중국 사람들도 기리는 곳이다. 부활 팀을 잠시 플랫폼의 한 장소에 멈추게 하고,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이토 히로부미를 쏴 죽인(저격) 안 의사의 애국적 위대한 행동을 설명하여 주었다. 이등은 안 의사의 세발의 총알을 맞고 20분 만에 죽었다. 안 의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한 목숨을 버릴 수 있었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하여 이 한 목숨을 희생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역밖에는 중국 호텔에서 한국 부를 운영하는 아저씨가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새 시달린 몸들을 잠시 쉬고는 모두 데리고 송화강 유원지로 가서 기분전환을 했다. 그리고 국가지정 보존물인 유대인 회당과 소피아 소련 정교회당을 돌아보았다. 오후에는 모두 원하여 지하상가에 가서 shopping 하는 재미들을 즐겼다. 심 노 자매님이 나에게 $100을 주셨다. 부활교회 단기 선교 팀은 그동안의 여정을 마무리하려고 한 방에 모두 모였다. 그동안 중국교회를 방문한 일들과 여행을 통해서 얻은 경험들을 나누면서 밤은 깊어갔다.
아침 일찍(7.22) 우리는 하얼빈 공항으로 나갔다. 부활 팀들은 북경에서 한국과 일본으로 가는 날틀을 타야 하는데 북경공항에서 갈아탈 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밖에 돼지를 않아서 잘 못하면 타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이 사정을 항공 관계자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예정된 날틀 한 시간 앞에 떠나는 날틀에 태워줄 뿐만이 아니라 자리가 모자라자 일등칸도 몇 자리 내주어서 다행이었다.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서 내 마음도 편했다. 남은 여정도 주님께서 평안으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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