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29) 썸네일형 리스트형 Swan Sea Bible School Swan Sea Bible School 11. 9일 Fri오늘은 Swan Sea Bible School에서 교사로 있는 Mr. Deric Earl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Mrs. Warren이 나를 역까지 데려다주었다. 열차가 Bath에서 Wales 수도 Cadiff에 와서 다른 차를 갈아타는데 40여 분이나 시간이 있어서, 시내에 나가서 거리 구경을 했다. London에서 오는 125 열차는 시설과 환경이 아주 좋았다. Swan sea에 내리니 Mr. Deric 선교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약 7년 만에 다시 보는 얼굴이었다. Swan Sea Bible School에 와서 학교를 둘러보고 마침 공부하고 있는 두 한국 여학생을 만났다. 이들은 다 독일에 있다가 공부를 하러 온 학생들이었다. 임옥진 자매가 .. Portland, Oregon Portland로 가는 길 6월 16 Mon. 1980 아침 Mr. Vance와 함께 목사님 댁에 가서 $ 100 수표와 함께 휴대용 작은 King James 성경을 선물로 주셔서 고마웠다. 인디언 기념 품 가게에 가서 $40 어치의 선물을 샀다. 그리고 방송선교 $20, 이종섭 $10, 김종만 $30을 보냈다. 넉넉지 않지만 받은 것을 나누고 싶었다. 오후 8:30 Portland 버스를 타기 위해서 Greyhound Terminal로 나왔다. 너무 고맙고 친절했던 Mr. Vance 가족과 그동안 정이 들어 나를 꾀나 좋아한 Bruce의 흔드는 손길을 받으면서 Greyhound는 북으로 향하여 떠나고 있었다. 이제 또 시카고에서 온 것 같이 3일을 타고 가야 해서 조금 아득하기는 했다. 피곤도 하지만.. 서 호남의 맹주 나주 천년목사(牧使) 고을 나주 6.23, 2023지난날 나주는 나에게 그저 지나는 역에 불과했다. 1970-80년대 한국 기독교 선교부 간사로 있을 때는 진도, 비금도로 가려면 목포에서 배를 타야해서 호남선을 여러 번 탄 적이 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일은 열차가 나주역에 닿으면, 배를 담은 광주리를 든 장사꾼들이 열차에 올라와서 “물이 찔끔찔끔 나는 내 배 사시오”하는 소리가 지금도 쟁쟁하다. 그때는 나주가 이렇게 천년 목사의 유서 깊은 고을인 줄을 미처 몰랐었다. 후 삼국시대 왕건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여 고려의 창업을 도운 해양 세력의 본거지인 나주는 역사의 많은 사연들을 담고 있는 흥미진진한 고장이다. 뒷날 고려 현종(2년)은 거란의 2차 침략 .. 왕건의 사랑 이야기 나주에는 왕건과 두 번째부인인 장화왕후(莊和王后), 오 씨의 사랑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다. 이들의 전설 같은 사랑의 이야기는 [고려사 열전 가운데 장화황후 오 씨] 편에 실려 있다.▶ 정현왕후는 나주 지역의 호족 오달련과 연덕교의 딸이다. “태조가 군사를 이끌고 나주를 행군하던 중 목이 말라 우물을 찾다가, 나주 금성산(錦城山) 남쪽에 상서로운 오색구름이 서려 있는 것을 보고 말을 타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열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예쁜 처녀가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물을 청하자, 처녀는 바가지에 버드나무 잎을 띄워 건네주었다. 태조가 이상히 여겨 버드나무 잎을 띄운 까닭을 물었다. 대답하기를 "장군께서 급히 물을 마시다가 혹 체할까 염려되어 그리하였나이다" 하고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 광주 항일 학생운동의 진원지 나주 옛 역(舊驛)나주에서 꼭 찾아보아야 할 곳이 있다. 그곳은 항일 학생운동역사의 뜻을 간직한 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나주의 옛 역(舊驛)이다. 이 옛 역은 일제 강점기인 1913년 7월 호남선 철로가 놓이면서 1925년 10월 23일 죽림동에 처음 세워진 나주역 건물이다. 이 역이 바로 광주 학생 운동의 진원지이다. 전라남도는 항일 학생운동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기념물 제183호로 지정하여 2007년 역 건물을 수리하여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 뒤 호남선이 복선으로 놓이고 KTX가 다니게 되면서 현대 시설을 갖춘 나주의 새 역은 나주시청이 가까운 나주역길 56에 세워지면서 이 역은 항일 학생 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역사적 기념물로 남게 되었다. 역사 안 개찰구에는 밀랍으로 .. 소문난 나주 곰탕 나주의 삼대 먹거리나주의 삼대 먹거리는 나주 곰탕, 구진포 장어, 영산포 홍어인데, 구진포 장어는 먹어 볼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나주 곰탕과 영산포의 홍어 요리를 소개하해 본다. 소문난 나주 곰탕나주시 볼거리 1번지에 있는 금성관, 나주목사 내아, 수루 문, 등 가까이에 곰탕집들과 전통 음식집들이 어우러져 먹거리 거리를 이루고 있다. 마침 때가 되어서 다른 지역에서는 맛볼 수 없다는 나주곰탕을 장태영형제의 권유로 먹어 보기로 했다. 오래전 우유를 풀어서 만든 가짜 곰탕 사건으로 나는 그동안 곰탕을 먹지 않아서 아주 오랜만에 곰탕을 먹어보게 되었다. 나주 곰탕은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맛이 아주 훌륭했다. 나주 곰탕은 전국에 소문난 브랜드로 나주를 찾는 사람들은 한 번은 꼭 먹어보고 간다는 말이 .. 영산포 영산강은 전남 담양에서 발원하여 광주, 나주, 영암을 거쳐 목포까지 122km를 흐른 뒤 바다에 이르는 호남의 젖줄이다. 영산포는 나주시에서 3Km 거리에 있는 영산강의 내륙항인 영산포구로 옛 항구 이름이다. 고려 때로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뱃길이 시작되는 영산포구는 주변 지역에서 생산된 여러 산물이 모이는 곳으로 제법 큰 마을을 이루었으며 내륙에서 바다를 통한 해상 운송업이 발달하였다. 영산포의 유래는 1363년 고려말 공민왕 때 신안군 흑산도에 딸린 조그마한 섬 영산도 사람들이 왜구의 약탈을 피해서 영산강 하류인 이곳에 살게 되면서 영산포라는 마을이 생겨났다. 그러나 1981년 영산강하굿둑(榮山江河口둑)이 완공되면서 영산포의 항구 시설과 뱃길이 사라지면서 영산포라는 이름만 남게 되었다. 그때 포구를.. Martin Luther 종교개혁의 현장 Wittenberg(비텐베르크) 7. 20, 1992오늘은 유럽에서 암흑시대를 이끌면서 가장 참혹했던 역사를 만들어 낸 암흑시대의 주역 로마 천주교에 항거하여 일으킨 개혁의 현장인 Wittenberg으로 가는 날이다. 독일을 여러 번 방문하였지만, 이제 떠나면 다시 독일을 방문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어서 Martin Luther가 종교개혁 운동을 일으킨 현장을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간호사 강 자매가 나의 뜻을 알고 자기네 가정과 함께 가자고 알려왔다. 아침에 강자매 가정이 왔다. 남편은 호리호리한 키에 날렵하게 생긴 독일 청년으로 직업이 자매와 같은 간호사였다. 두 초등학생 아들들도 귀엽게 생겼다. 그리고 한국서 방문한 두 자매도 데리고 와서 오늘 우리 일행은 모두 8명이나 되었다. 만남의 기.. 이전 1 2 3 4 5 6 ··· 5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