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10) 썸네일형 리스트형 사후동 생활 사후동의 삶 1963-1966내 인생은 이제 사후동 산골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 산골에서 한 3년 동안 많은 경험을 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내 앞길의 청사진도 만들게 되었다. 1963~1964년 두 해 동안은 사후동 건설과 농장과 목장을 이루는 일로 내 삶의 모든 것을 바쳐 정신없이 살았다. 1965년 3월에야 매카피 선교사의 집 응접실에서 사후동 교회 개척의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산지에 포도, 복숭아, 사과나무를 심었고 개간지에는 사일리지(silage, 발효 사료) 용 옥수수와 오차드 글라스(Orchard grass)를 심고 채소밭도 만들어 먹거리를 심으면서 사후동은 일상적이 되어 가고 있었다. 두 마리 저지 젖소에서 나오는 우유로 치즈와 버터도 만들고 비트.. 한국 기독교 선교 학교 한국 기독교 선교학교McCafee 선교사는 성경학교를 하려는 열망을 가지신 분이었다. 그러나 그의 열망은 현실성이 없는 허상에 불과했다. 매카피 선교사는 가끔 선교부 직원들과 성경말씀을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성경학교를 하려는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분이 생각하는 성경학교란 인적 자원과 인프라를 갖춘 것이 아니고 사랑반 성경반 같은 것이었다. 매카피의 뜻에 따라 1965년에 형제자매 10여 명으로 사후동 성경반이 시작되었다. 이 성경반을 나중에 내가 선교학교라고 이름 지었는데 이런 사연이 있었다. 공부하던 양평 출신의 김영철형제가 군에 입대하여 군종 하사로 군교회에서 복무하고 싶어서 성경학교 졸업장을 만들어 달라는 편지가 욌다. 그래서 그 형제를 도와주려고 수료증을 인쇄하면서 내가 [한국 기독교 선.. 무전 전도 여행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남사 중학교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한국 기독교 선교회 의료 선교 오산 기독교 병원병원 사업은 선교부로서는 아주 가치 있는 사업이었다. 선교부 수입과 아울러 지역사회봉사와 복음 선교에 좋은 영향이 되었다. 매카피 선교사에게 오산 기독교 병원은 계획적이 아니라 우연에서이다. 1966년 오산에 나이 많은 의사가 오랫동안 의원을 운영했는데 나이가 많아지면서 손도 떨리고 하여 의원을 계속 운영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오산지역의 의료발전을 위하여 매카피 선교사에게 그분 이름으로 병원을 설립하여 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매카피 선교사가 오산 기독병원 허가를 받아서 병원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는 오산지역에는 종합병원 성격을 가진 병원이 없었다. 선교부 병원은 그저 기본만 갖춘 종합병원이지만 지역사회 주민들은 크게 환영하고 있었다. 매카피 선교사의 노력으로 미국에서 의료.. 첫 전국 수양 회 첫 사후동 전국 수양 회 1965. 7. 30-8.2 사후동선교부와 사후동 교회 개척 2년 만에 전국 수양 회를 할 만큼 빠르게 발전하였다. 그 당시 전국에 형제교회의 숫자는 열 손가락 안에 있을 때였다. 이때 나는 매카피 선교사에게 전국 수양 회를 사후동에서 하자고 제안하여 모두가 좋게 생각하여 여름 수양회를 하도록 하였다. 이때로부터 사후동을 중심으로 해마다 전국 수양 회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수양 회를 조직하고 운영해 본 경험은 없었지만 연구하면서 준비하였다. 그리고 사후동 교회의 발전을 위하여 설교하는 일과 전도하는 일로 마음을 많이 쓰게 되었다. 이러한 활동들은 나의 영적 성장에 큰 활력소가 되었으며 나 자신을 주님께 드려 섬긴다는 보람과 큰 기쁨이었다. 사후동 교회를 중심으로 모인 첫 전국 .. 사후동 기독교 수양관 사후동 수양관한국 형제교회는 아주 천천히 발전해 가고 있었지만. 특히 사후동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는 2~3년 안에 몇 교회들이 개척되었다. 1968년 한국 형제자매들의 수양회를 통해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한 매카피 선교사는 수양관을 지을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수양관이 지어질 곳으로는 오산으로 넘어가는 고개 왼쪽 막장 골짜기에 있는 땅을 샀다. 이 골짜기를 살 때 외국 사림인 매카피 이름으로는 살 수가 없어서 김흥자 이름으로 샀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이 외로운 골짜기에 새로운 숨결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수양관은 자금 사정으로 여러 해가 지나서야 겨우 건물이 다 지어질 수 있었다. 건물이라고 해야 시멘트 벽돌에 아이빔(I-beam)을 얹어 짓는 값싸고 볼품없는 창고 모양의 건물이다. 수양관 .. 거창 장팔리 교회 거창 장팔리 교회 1965, 11월-1966. 4월장팔리 교회는 경남 거창군 거창읍 외곽 장팔리 마을에 있다. 마을이 읍내에서 거리가 긴 8리라고 해서 마을 이름을 장팔리라고 지었다고 한다. 안식년으로 미국에 들어가 계신 매카피 선교사님은 이 겨울 나에게 거창에 내려가서 장팔리 교회를 돌보아 달라고 부탁해 왔다. 나는 새로운 지역에서 주님을 섬기는 경험을 하고 싶어서 쾌히 받아드렸다. 장팔리 교회는 1961년 매카피 선교사에 의하여 개척되었다. 그 분이 거창 산골짜기에 오게 된 것은 미국에서 유학을 하던 전영찬 이란 분이 미국의 모임과 여러 독립교회로 부터 후원 줄을 가지고 와서 거창고등학교를 세우고 새 건물을 짓게 되었다. 그때 미국 교회에서는 매카피 선교사가 건축 공사 감리사로 임명하여 1960년 한.. 이전 1 2 3 4 5 6 ··· 5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