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14) 썸네일형 리스트형 진시 왕의 병마 용- 경교 기념비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일본 교회 방문 1 일본 교회 방문기 1982. 9일본이라는 나라는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과 감정이 그리 좋은 나라는 아니다. 우리의 남해안을 끊임없이 침략하여 죽이며 약탈하던 저 왜국, 임진왜란, 국권 탈취, 한민족과 동남아에 저지른 저들의 만행에 대해서 지금도 사과할 줄 모르는 저 민족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계시다는 데 우리의 생각이 달라지게 된다. 이 민족의 국기는 일장기(日章旗)라 부르며, 흰색 바탕에 동그란 붉은 큰 점은 해를 뜻하며, 이름은 “히노마루(日の丸)라고 한다. 예로부터 태양신을 숭배해 온 왜국은 "해가 뜨는 나라, 태양이 나오는 곳"이라고 여겼고, 왜국 시조의 주신(主神)인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가 태양신인 것에 영향을 받아, 신사(神社)의 깃발로 사용되어 오다가 일본의 국기, [일장기]가 되었다... 일본 교회 방문 2 홋카이도(北海道) 아이누(Ainu)족홋카이도는 원래 원주민 아이누(ainu)족이 살던 곳이다. 아이누 족은 홋카이도와 혼슈의 도호쿠 지방(東北地方), 러시아의 쿠릴 열도, 사할린 섬, 캄차카 반도에 정착해 살던 원주민이다. 일본의 본 민족인 야마토 족과는 다른 북방 몽골리안 민족으로, 아이들의 엉덩이에 푸른 몽고반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민족과 유전자가 거의 같다. 아이누 족은 역사적으로 개별적인 부족 국가 형태를 지녔으며, 독자적인 언어인 아이누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누'란 단어가 일본 내에서 차별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생각에서 스스로를 우타리(친척, 동포라는 뜻)라고 부르는 아이누 사람들도 일부 있다고 한다. 일본 안에 지금 아이누 족은 약 2만 5천 명으로 추산되나, 15세기경부터 혼슈.. 일본 교회 방문 3 고지마 교회, 포화 교회, 도쿄교회 동경으로 6. 20. 월우리가 어디를 방문해 보면 금방 떠나고 싶은 곳이 있는가 하면 좀 더 머무르고 싶은 곳이 있다. 삿포로 이곳 교회야말로 좀 더 머무르면서 주님을 더 배우고 싶은 곳이었다. 친절하고 사랑 많은 미츠하시 목회자 내외와 여러 형제자매님들과 아쉬운 손들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아침 6시 날틀로 떠나 8:25 동경에 도착했다. 동경 공항에서 아사까 형제가 우리를 데리고 지바에 가서 점심 식사를 대접해 주었다. 고지마 교회식사를 마치고 교제하는데 시모다떼 교회의 목회자인 가고지마 형제가 와서 우리를 고지마 교회로 데리고 갔다. 저녁 교제 시간에서는 내가 26세에 전심 사역자가 되었다니까 일본 형제들이 일본에서는 그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함께.. 일본 교회 방문 4 군마껭, 후바다, 후쿠오카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점심을 함께 나눈 뒤 한일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면서 즐겼다. 도끼 의사, 노 형제의 사진첩에서 군의관으로 만주에서 근무할 때의 사진들을 보면서, 군국 주의 시절 모든 일본 남자들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들도 의사가 되어서 아버지를 돕고 있었다. 뒷마당에는 전통적인 일본 정원을 꾸몄는데 이 군마현에서는 제일 아름답다고 소문나 있다고 한다. 일본 정원의 특색은 커다란 대 자연을 좁은 공간에 축소하여 드려 놓은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가정공원은 축소지향적인 성격을 가진 일본 사람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는 것 같았다. 가정공원은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웠다. 그곳에 며칠 있는 동안 대 자연 속에 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름.. 일본 교회 방문 5 오사카, 히로시마오사카(大阪) 10. 2. 토오전에 일본 형제들과 교제하고 점심을 먹은 뒤 우리는 오사카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13:45 히까리 고속 열차로 오사카로 떠났다. 모임에서 사랑의 선물 10,000엔씩을 주었다. 나는 일기를 정리하려고 식당차로 가서 쉬면서 쓰는데 1시간이 지났을까 조병현이 와서 그동안 서먹했던 마음을 푸는데 김종만도 왔다. 음료수를 함께 나누면서 그동안 서먹했던 마음들을 풀었다. 여럿이 어울려 다니다 보니 감정상 충돌도 있고, 모임에서 더 자기를 나타내거나 소개해 주는 강도에 따라 감정의 변화를 받는 일들이 있을 수 있었다. 누구를 소개하는 분도 듣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배려하는 소양이, 듣는 사람도 그러려니 하는 무던함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나 자신도 더 깊고 높은.. 일본 교회 방문 6 오사카, 이즈미교토 교회 10. 6. 수 아침 다까스끼 형제의 운전으로 노형, 조, 이 자매가 있는 교토(京都)로 갔다. 이즈미의 오가야 형제가 시계가 달린 만년필을 하나씩 선물로 주고 갔다. 이즈미 모임에서 보낸 6만 원을 만원씩 나누고 만원은 공금으로 쓰기로 했다. 교토 모임에서 우리들의 시내 관광을 위해 나까히라 형제의 안내로 신궁을 보고, 도쿠가와 이에야쓰(德川家康)가 살던 300년 전 저택을 돌아보았다. 막부시대 역사의 한 부분을 보았다. 豊橋(이즈미) 교회 오후에 히까리 특급을 타고 豊橋에 내리니, 개인 병원을 하고 있는 오가와(小川)노형내외의 영접을 받았다. 우리를 식당으로 인도하여 푸짐한 저녁을 대접해 주셨다. 그리고 자매님은 먹고 남.. 강태훈 원장 강태훈 형제님은 인천 부평에서 사모님과 함께 선한 사마리아 원을 세우시고 원장으로서 그리고 구원을 받으신 뒤로는 원 안에서 부평교회를 세우신 목회자로, 한국 형제교회의 첫 복음 전도자로서, 극동방송의 총무로서 방송 설교자로서, 활동하시면서 복음이 널리 전하셨다. 소개하고 있는 강 형제님의 간증은 강 형제님이 돌아가시기 전 4년 전에 제가 직접 인터뷰를 한 것이다. 강태훈 원장은 1932년, 1월 24일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셨다. 모친께서는 가장 율법적인 장로교 재건 파(신사 참배 거부로 고난 받은 분들이 만든 교단) 권사님이셨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리어 엄한 종교생활을 하셨다. 어머니는 새벽기도를 마치시고 돌아오시면 온 가족을 깨워서 다시 자녀들과 아침예배를 드리시고, 하루에 아침, 11시,.. 이전 1 ··· 45 46 47 48 49 50 51 5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