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방문기 (11) 썸네일형 리스트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런데 어느 사람 하나 북한 방문기나 여행기를 보고 느끼고 경험한 대로 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왜 그럴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분들은 여행하고 오면 보고 느낀 새로운 세상을 소개하느라 신문 지상이나 SNS에 글과 사진을 올리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유독 북한을 다녀온 분들 가운데는 들어내 놓고 이렇다 할만한 여행기를 소개한 글은 보기기 쉽지 않다. 또 내가 아는 몇 분들은 나에게 우리 가까운 사람들이 북한 친척을 방문하고 왔는데 도무지 북한에 대해서 말이 없다고 하면서, 왜 그러느냐고 묻기도 한다. 이유가 있다. 친척을 방문한 사람들은 다녀와서 하는 말로 인하여 북에 있는 친척들이 어.. 두만강을 건너서, 첫나들이 나의 첫 번 조선 나들이는 1998년 가을이 깊어가는 때였다. 중국의 들에는 황금물결이 넘실거리고 있고, 키가 넘는 옥수수밭에는 황금알들이 가득히 담긴 넉넉하고 넘치는 수확의 계절이다. 산과 들의 자연 만물들은 아름다운 색깔의 옷들을 천천히 갈아입으며 한 해를 마무리해 가고 있었다. 나는 이때부터 여러 해에 걸쳐 조선을 드나들면서 개인적으로 조용히 그리고 아주 적은 일들로 도움을 주려고 애써 보았다. 나는 처음 찾아보게 되는 반쪽 조국, 우리가 만나게 될 분들을 위하여 수십 벌의 옷들과 겨울용 두꺼운 양말들을 많이 샀다. 그리고 한국에서 보내온 양복들을 천으로 된 중국 큰 배낭에 눌러 넣어 둘러메고 양손에 들고 도문으로 내려왔다. 염 사장과 허 군을 만나 이제 조선으로 건너가는 일을 의논하였다... 라진의 정취 철조망에 갇힌 나라 바다로 내려가는 중턱에는 녹슨 고압선 전깃줄이 걸려 있는 철조망이 길게 뻗어 있어서 기분이 섬뜩했다. 박 대표는 남조선 특무(간첩)들 보다는 여기 사람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쳐 놓은 것이라고 하면서 그나마 지금은 전기가 없어서 사용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온 나라가 철조망으로 둘러 쳐져 있어서 마치 조선은 철조망에 갇혀있는 나라라는 인상을 받게 되었다. 밖에서 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자기 백성들을 막기 위한 철조망이라니 한심하기만 했다. 해산금 해수욕장 아침 식사를 하고 호텔 라운지에 잠시 앉아 있자니 호텔에 속한 여성들이 모두 흰 운동복에 흰 모자를 쓰고 먹을 음식들을 들고 어디론가 가는 것 같아서,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더니 일부는 산으로 일부는 바다로 .. 라진의 이모저모 라진시 라진은 병풍같이 두르고 있는 재양산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해 뜨는 동해의 푸른 바다를 안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바닷가로 나가려는데 약간의 가는 비가 또 내리고 있었다. 중국 사람들이 차를 가지고 아침 바닷바람을 쐬려고 나왔다. 어저께 바다에서 먹었던 백합은 지금 여기서 한 개 10원씩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 앞쪽에 있는 마을을 돌아 지나서 버려진 수영장이 보여서 가보니 물이 없는 수영장에는 누더기 같은 덮을 것에 비닐을 그 위에 덮고 남녀가 자고 있었고, 3∼4살 되어 보이는 두 남자아이들이 일찍 일어나서 머리맡에서 놀고 있었다. 저 가족은 밤에 내리는 비를 비닐로 가리고 지낸 것이다. 마침 가지고 있는 것이 없어서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어도 아무것도 줄 수가 없었다. 꽃제.. 지원물자 이번 두 번째 조선방문은 지원물자와 함께 하였다. 지난 9월 방문했을 때 한 인민학교(초등학교)를 찾아보면서 어린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따뜻한 겨울을 보내도록 겨울 용품을 도와주리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어려움을 견디어 내고 있는 어린이들이 마음에 내내 걸렸다. (그동안 써 오든 “인민학교”라는 이름은 지금은 중국식으로 “소학교”로 바뀌었다.) 그 학교는 양재산 아래 있는 학교로 학생들이 한 700여 명 선생님들이 한 50여 명이었다. 그리고 공장 식구 가족들이 한 800여 명이었다. 이들 모두가 이 추운 겨울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지나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들을 돕기 위하여 자금이 아주 적게 생각하더라도 $15,000은 있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몇 명 되지 않는 친구와 아.. 아내와 찾은 조선 6. 2001 이번 조선 방문은 아내와 함께 가는 길이다. 우리는 조선을 가려고 훈춘에 있는 친구 집에서 하루 쉬면서 조선에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침에 택시로 조선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취엔허(권하)로 가는 길은 이제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서 기분이 상쾌했다. 전에는 산굽이를 여러 차례 돌아 넘어갔지만 지금은 두 개의 굴을 뚫어서 직선 도로가 되어 시간도 짧아져서 좋았다. 이제는 훈춘에서 택시로 40분이면 조선이 건너다 보이는 두만강 국경선에 닿을 수 있는 편한 세상이 되었다. 세상은 3년 만에 이렇게 달라졌다. 중국은 모든 곳에서 빠르게 변화되어가고 있었다. 조선으로 관광 가는 중국 관광객들도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었다. 우리는 중국 해관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배낭을.. 빵 공장 지난해 라선시에 있는 공장과 김일성 주석의 생신인 4월에 빵을 만들어 내기로 했지만, 우리 쪽이 재정이 준비되지 못하여서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6월에 들어서서야 자금이 허락되었다. 사실은 저쪽에서 빵 만들 준비를 하고 나는 밀가루만 사 보내면 좋겠는데, 저쪽 사정이 빵을 만들 수 있는 아무 준비도 없어서 내가 중국에서 모든 것을 사서 보내 주어야 할 형편이다. 우리도 이런 기구를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막연했지만, 시장에 나가서 알아보기 시작하여 2∼3일이 지나 서야 빵을 만들 기본 기구들인 밀가루 반 죽기, 자동 절단기를 살 수 있었다. 그리고 큰 가마(솥) 세 개, 찌는 틀 15개, 효모제(이스트)를 사서 이 기구들을 도문으로 내려보냈다. 라진으로 들어가는 날짜가 정해지자 나는 도문시 양식 공사에 가.. 최상봉 부자와 찾은 라선시 5.31-6.3, 2002 혜성같이 나타난 지원자 조선 지원의 길이 열리다. 그동안 조선에 길이 열려서 한 일 년 동안 밀가루를 보내어 빵을 만들어 먹이면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아가고 있었는데, 우리가 더는 지원할 형편이 되지를 않아서 손을 놓게 되어서 아쉬운 일이었다. 굶주린 동포들이 우리의 지원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 수년 동안 주님께 기도를 간절히 하고 있지만, 우리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후원자나 동역 자를 주시지 않았다. 특히 간접 선교는 물량 지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우리 같이 홀로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큰 선교 프로젝트를 이루어 나가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선에 무엇을 한다는 것은 조선 당국자가 인정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아니면 쉽게 허락되는 나라가 아닌데, 아무 배경..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