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여행기 (53) 썸네일형 리스트형 4. 친구, Walter ◈ 나이로비 1.13 화 맑음 오늘은 나이로비로 떠나는 날이다. Daniel 조카들이 만들어 온 차를 마시면서 마지막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매일 우리 방에 물을 길어다 주느라 수고한 이 집 막내에게 용돈을 조금 주었더니 좋아했다. 차를 타려고 길에 나왔다. 소형 버스가 왔다. Daniel은 운전기사와 무엇인가 의논하더니 우리에게 와서 타라고 한다. 두 조카와 사모가 눈물로 우리를 떠나 보내고 있어서 마음이 서운했다. 차를 타고 보니 우리를 앞자리에 앉히려고 앞 두 사람을 우리 뒤로 보냈단다. 미안했다. 지난번 올 때 찍지 못한 야생동물들의 모습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이나 왔을까 길에서 검문한다. 사람들을 다 내리게 하고 가방의 모든 짐은 다 열어 보게 한다. 우리 두 사람의 가방도 길바닥에.. 1. 러시아 연해주 1995 ♣ 연해 주 선교여행 9. 1995 소련의 극동지역을 우리는 연해주(沿海州)라고 부르지만 소련 말로는 프리모르스키(Примо́рский край)라고 부른다. 주 서울은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이다. 중국 북한과 국경선을 이루고 있으며 인구는 210만 정도이다. 역사적으로 광개토대왕 때에는 고구려가 다스렸고 다시 서기 698년부터 926년까지는 발해가 이 지역을 다스렸다. 그때 이 지역은 고구려 후예와 퉁구스 계통의 말갈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115년부터 1234년까지 강력한 제국인 여진족의 금나라가 지배하다가 몽고 칭기즈 칸의 침입으로 멸망하였다. 늘 국경선 문제로 겨루던 러시아는 청나라가 약해지자 밀고 내려와서 1858년 청국과 아이훈 조약을 맺으므로 헤이룽쟝(黑龙江, 흑룡강/아무르 .. 2. 우수리스크 고려인 선교지 ♣ 블라디보스토크 9. 21 1995 하바와 블라디보스토크의 거리는 650Km인데, 열차는 밤새 달려서 아침 9시 열차는 종착지인 블라디보스토크 역에 도착했다. 떠나기 전 김 선교사가 준 성경책들이 욕심이 나서 보따리 하나를 더 만들었더니 얼마나 무거운지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역 밖으로 나오는 데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왜 이리 무리하게 고생해야 하느냐 하는 후회도 해 보지만 받을 자들의 즐거워하는 모습들을 보니 또 힘이 났다. 밖에 나와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젊은 감리교 박 선교사가 나와 주셨다. 그 분 차에는 학교로 가는 사모님과 신학교에 입학을 시키고자 하는 소련 형제가 타고 있었다. 사모님을 학교에 내려주고 신학교를 찾아가다가 한 검문소에서 검문을 받았다. 내가 도착 후 24시간 안에 등록을.. 일본 교회 방문 1 일본 교회 방문기 1982. 9일본이라는 나라는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과 감정이 그리 좋은 나라는 아니다. 우리의 남해안을 끊임없이 침략하여 죽이며 약탈하던 저 왜국, 임진왜란, 국권 탈취, 한민족과 동남아에 저지른 저들의 만행에 대해서 지금도 사과할 줄 모르는 저 민족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계시다는 데 우리의 생각이 달라지게 된다. 이 민족의 국기는 일장기(日章旗)라 부르며, 흰색 바탕에 동그란 붉은 큰 점은 해를 뜻하며, 이름은 “히노마루(日の丸)라고 한다. 예로부터 태양신을 숭배해 온 왜국은 "해가 뜨는 나라, 태양이 나오는 곳"이라고 여겼고, 왜국 시조의 주신(主神)인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가 태양신인 것에 영향을 받아, 신사(神社)의 깃발로 사용되어 오다가 일본의 국기, [일장기]가 되었다... 일본 교회 방문 2 홋카이도(北海道) 아이누(Ainu)족홋카이도는 원래 원주민 아이누(ainu)족이 살던 곳이다. 아이누 족은 홋카이도와 혼슈의 도호쿠 지방(東北地方), 러시아의 쿠릴 열도, 사할린 섬, 캄차카 반도에 정착해 살던 원주민이다. 일본의 본 민족인 야마토 족과는 다른 북방 몽골리안 민족으로, 아이들의 엉덩이에 푸른 몽고반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민족과 유전자가 거의 같다. 아이누 족은 역사적으로 개별적인 부족 국가 형태를 지녔으며, 독자적인 언어인 아이누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누'란 단어가 일본 내에서 차별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생각에서 스스로를 우타리(친척, 동포라는 뜻)라고 부르는 아이누 사람들도 일부 있다고 한다. 일본 안에 지금 아이누 족은 약 2만 5천 명으로 추산되나, 15세기경부터 혼슈.. 일본 교회 방문 3 고지마 교회, 포화 교회, 도쿄교회 동경으로 6. 20. 월우리가 어디를 방문해 보면 금방 떠나고 싶은 곳이 있는가 하면 좀 더 머무르고 싶은 곳이 있다. 삿포로 이곳 교회야말로 좀 더 머무르면서 주님을 더 배우고 싶은 곳이었다. 친절하고 사랑 많은 미츠하시 목회자 내외와 여러 형제자매님들과 아쉬운 손들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아침 6시 날틀로 떠나 8:25 동경에 도착했다. 동경 공항에서 아사까 형제가 우리를 데리고 지바에 가서 점심 식사를 대접해 주었다. 고지마 교회식사를 마치고 교제하는데 시모다떼 교회의 목회자인 가고지마 형제가 와서 우리를 고지마 교회로 데리고 갔다. 저녁 교제 시간에서는 내가 26세에 전심 사역자가 되었다니까 일본 형제들이 일본에서는 그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함께.. 일본 교회 방문 4 군마껭, 후바다, 후쿠오카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점심을 함께 나눈 뒤 한일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면서 즐겼다. 도끼 의사, 노 형제의 사진첩에서 군의관으로 만주에서 근무할 때의 사진들을 보면서, 군국 주의 시절 모든 일본 남자들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들도 의사가 되어서 아버지를 돕고 있었다. 뒷마당에는 전통적인 일본 정원을 꾸몄는데 이 군마현에서는 제일 아름답다고 소문나 있다고 한다. 일본 정원의 특색은 커다란 대 자연을 좁은 공간에 축소하여 드려 놓은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가정공원은 축소지향적인 성격을 가진 일본 사람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는 것 같았다. 가정공원은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웠다. 그곳에 며칠 있는 동안 대 자연 속에 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름.. 일본 교회 방문 5 오사카, 히로시마오사카(大阪) 10. 2. 토오전에 일본 형제들과 교제하고 점심을 먹은 뒤 우리는 오사카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13:45 히까리 고속 열차로 오사카로 떠났다. 모임에서 사랑의 선물 10,000엔씩을 주었다. 나는 일기를 정리하려고 식당차로 가서 쉬면서 쓰는데 1시간이 지났을까 조병현이 와서 그동안 서먹했던 마음을 푸는데 김종만도 왔다. 음료수를 함께 나누면서 그동안 서먹했던 마음들을 풀었다. 여럿이 어울려 다니다 보니 감정상 충돌도 있고, 모임에서 더 자기를 나타내거나 소개해 주는 강도에 따라 감정의 변화를 받는 일들이 있을 수 있었다. 누구를 소개하는 분도 듣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배려하는 소양이, 듣는 사람도 그러려니 하는 무던함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나 자신도 더 깊고 높은.. 이전 1 ···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