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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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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리는 중국 선교의 길 밝아오는 중국선교의 빛 (黎明的中国宣教) 1994년이 밝으면서 우리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그동안 기다리던 캐나다 시민권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 선교지를 답사하는 Vision Trip을 계획하였다. 새 해 첫날 매일 읽는 묵상의 책에서 마음에 담을 주신 귀한 말씀들을 주셨다.모든 성도가 그의 손안에 있으며…. 신명기 33:3알 수 없는 미래를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주님께 맡기는데 꺼리지 말자 “(Never be afraid to entrust the unknown future to the all-knowing God)우주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은 나를 붙드시고 계신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The God who holds the universe Is the God who is holding ..
첫 번째 중국 선교 여행 5.1994 중국 선교 18년을 정리하면서, 네 차례 단기 선교 여행♣격세지감(隔世之感) 1994년 중국 Vision Trip은 선교를 위한 답사 여행이었다. 그때 중국의 모습과 지금의 중국을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빠르게 변화 발전되었다. 중국은 2008년 세계 올림픽을 기점으로 모든 면에서 한 단계 Up-Grade 되었다. 시민들도 많이 교양되어서 공중도덕이나 사회질서가 놀랄만한 수준이 되었다. 지금도 시골 등지는 아직 옛 모습 그대로이지만 생활의 여러 분야에서 변화되었다. 우리가 1994년부터 중국 선교를 시작하여 2011년 마감하기까지 쓴 글들을 정리하는 나 자신도 중국이 이렇게 빠르게 변화 발전하여 다른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지난날의 보고 ..
1. 북경(北京,베이징) 북경은 3천 년 역사의 고도이다. 북경이 최초로 수도로 등장한 것은 거란족이 세운 요(遼) 나라가 도읍을 정하면서 남경이라 이름했다. 1013년에 연경(燕京)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125년 요를 멸망시킨 금(金)이 중도(中都)로 바꾸었다. 1231년 금을 몰아낸 윈(元)은 대도(大都)라고 하다가, 원을 멸망시킨 명(明)은 1421년 대도를 명나라 서울로 정하면서 오늘의 이름인 북경(北京)이라 했다. 인구는 천백만이 넘으며, 날씨를 제외하고는 유명한 볼거리로 가득 한 도시 박물관이다. 북경에서 보낸 시간은 2박 3일이었다. 짧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자 곤한 잠에 떨어져 있는 이 기자를 깨워서 호텔 식당에 내려갔다. 아침은 Scramble Egg, 조그만 토막의 햄 4조각, 찐빵(만토우) 4개, 그리고..
2. 연길 가는 열차 중국 올 때 북경을 찾아볼 생각은 한 적은 없다. 그런데 이렇게 길을 가다가 좋은 친구를 만나서 중원의 대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북경에 있는 교회에 대한 아무 정보도 가지고 있지 못해서 교회를 방문하거나 믿는 자들을 만나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북경에서 연변으로 가는 열차는 북경 남역에서 떠나고 있었다. 역에 도착하니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석탄이 한쪽에 쌓여 있어서 길바닥과 역 마당 그리고 대기실 안에도 석탄 먼지가 일고 있었다. 대기실 의자에는 이미 누워 자는 사람들과 보따리와 가방을 가진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주로 남방에서 일자리를 찾아 올라온 사람들로 오갈 데가 없어서 역 대기실을 임시 거처로 삼고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중국은 정말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여기..
3. 연길-용정 연길시와 룡정시 연길시중국에서 처음 맞이하는 주일이다. 이 기자 식구들을 데리고 조선족 삼자 교회에 갔다. 같이 간 12살 아들은 교회 안내원이 들어가지 못하게 해서 밖에서 놀고 있으라고 했다. 6살 된 딸은 유아실에 데리고 가니 그곳에서는 주일학교같이 하고 있었다. 중국 종교법에는 18세 이하의 청소년에게 종교 교육을 하지 못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중국 기독교에는 주일학교와 중. 고등부가 없으므로 교회의 장래가 심각한 것 같다. 또 어떤 곳에는 대담하게 주일학교를 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항공우편 봉투월요일 편지를 쓰고자 큰 백화점 문방구에 가서 편지지를 사고 항공 봉투를 사려고 하는데 일반 봉투는 눈에 보이는데 유독 항공 봉투만은 보이지 않는다. 한참 헤매다가 마침 조선말 하는 점원이 있기에 물어보..
4. 도문 시 중국 조선 국경선 도시 도문도문은 북한의 남양 시를 마주 보고 있는 곳으로, 일본 제국주의 시절에는 관동 제일의 교통 중심지였다. 지금은 인구 10만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한 도시로서 조선족이 중국인들보다도 많이 사는 곳이었지만, (이젠 반대로 되어가고 있다) 경제 침체로 폐쇄된 공장들과 국영 상점들로 실업률이 높은 곳이었다. 도문은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곳이다. 해방 뒤 목단강에 살던 우리는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남으로 오다가 도문에서 1년 반 이상을 살던 곳이다. 여기서 내 아래 여동생이 태어났다. 나는 도문 삼자 교회에서 5일 동안 머물면서 장로님 내외분을 통해 중국의 사정을 들으면서 중국 교회의 과거와 현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그곳에 있는 동안 말씀을 전하면서 매일 주위를 ..
5. 백두산 갑작스런 백두산 방문과 1박 2일의 기자 생활한 달 남짓 연길 지방의 생활을 끝내고 곧 떠나려고 짐을 챙기고 있는데, 이 형제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후 한 시에 장백산으로 가게 되었으니 12시 반에 만나자고 했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부른다. 만나서 간 곳은 동북아 호텔이었다. 잠시 후 그곳에는 연길에 있는 언론 기관 기자들이 몇 명 왔고 한국에서 온 양복쟁이들이 모였다. 영문을 모르고 온 내가 알게 된 것은 내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조카가 되는 노은호 회장이 길림성 정부와 합작으로 장백산에 Four Star 호텔과 온천장, 그리고 스키장 개발을 위한 기공식을 한단다. 인사들을 시키는데 내 차례가 되니까 캐나다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노 회장..
6. 연길에서 목단강으로 연길은 조선족이 많아서 한국이란 느낌도 들었다. 여기 어디서 정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연길에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 같은 사람까지 더 보탤 일이 없는 것 같다. 나는 나의 동심의 세계가 있는 흑룡강성 목단강에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기를 기대했다. 목단강으로 가는 열차는 도문에서 떠나기 때문에 연길에서 아침에 기차나 버스를 타고 도문으로 가야만 했다. 그래서 초행길이므로 전날 이 기자에게 미리 부탁했다. 처음 가는 길이니 충분한 시간 전에 도착해야 하니까 빨리 가는 차를 일찍 타도록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음날 나를 태워 준 버스는 완행 중의 완행이었다. 9시 45분 기차를 타기 위해서 무거운 가방과 함께 얼마나 마음이 바빴는지 모른다. 도문 시내에 들어와서 장꾼..